항공사-일반직-인간관계

취업전쟁과 정기사진전

학창시절에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던 저는 사진동아리에서 선배들의 권유로 총무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매년 12월에 개최하는 정기사진전을 준비하면서, 저는 총무로써 필요한 예산을 책정하고 동아리 회원들로부터 회비를 모아야 했습니다. 저는 선배들을 찾아 다니며 회비를 걷으면서도 서로 유쾌하지 않는 경험을 했고 심지어, 몇몇 선배들은 저를 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선배들이 야속하게만 느껴졌지만, 우선 저에게 문제가 있지 않나 스스로를 돌아 보았습니다. 취업에 힘든 선배들에게 회비를 강요하는 듯한 자세를 보였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배들을 찾아가 커피를 뽑아드리면서, 선배들의 취업문제를 함께 걱정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자 선배들은 예전처럼 저를 도와주고 싶어했고, 기쁜 마음으로 회비를 납부해 주셨습니다. 또한, 저는 정기사진전에 불필요한 낭비요소를 과감히 제거하고, 학교주변 상가의 광고사진을 찍어주는 대신 보다 많은 행사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노력들 덕분에 매년 적자였던 정기사진전은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고 다가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소중한 교훈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소중한 경험을 잊지 않고, 대한항공의 높은 하늘에서 늘 선배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과거 타인과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갈등상황과 이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던 본인의 전략 및 노하우 항목입니다.

신용평가-애널-장점과단점

배운 만큼 써먹기

저의 가장 큰 장점은 “배운 것을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올해 1월에 금융관련 지식을 쌓기 위해  000에서 개최한 0000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의 최종 과제물인 금융시장 보고서를 성공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스케쥴관리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팀의 작업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엑셀의 매크로기능을 이용한 스케쥴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프로젝트를 관리했습니다. 공동으로 스케쥴을 관리하지 못해 막판에 허둥대던 다른 팀에 비해, 우리 팀은 스케쥴관리를 통해 효율적으로 작업을 분배하여 완성도 높은 보고서를 제출하여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팀 동료들은 저에게 <엑셀의 달인>이란 별명을 붙여 주었고, 저는 제 작은 재능을 활용하여 팀프로젝트의 성공에 기여할 수 있어 더욱 기뻤습니다. 저의 단점은 가끔 한 분야에 몰입하여 작은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은 실수가 큰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에, 사소한 일이라도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고 아웃룩을 통해 To-do List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신용평가-애널-강점과 장점

500불 만들기 대작전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공익근무를 시작하면서, 저는 FRM 시험합격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부모님께 시험등록비를 부탁드리기 싫어, 스스로 등록비를 마련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공익근무 월급은 식비와 교통비를 포함하여 약 20만원으로 빠듯했지만, 식비와 교통비를 아껴 14개월만에 등록비 500불을 마련하였습니다. 일년넘게 고생하며 모은 돈으로 등록한 시험이었기에, 한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노력하여 <상위 1분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FRM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고 목표달성을 위하여 혼자서 준비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인내하는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 신용평가사에 입사하여, 아시아 최고(AAA)의 국제적 신용평가사로 도약이라는 비전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공기업-기획홍보-학창시절

학창시절

고등학교 때부터 헌혈활동을 시작한 이후, 정기적으로 헌혈하겠다는 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등록헌혈회원이 되었습니다. 헌혈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오는 기증자들의 모습이 부러워 친구들에게 헌혈활동을 권유해 봤지만, 오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곤 했습니다. 친구들의 오해를 없애기 위하여 적십자사의 해명자료를 설명하고 헌혈이 주는 기쁨을 이야기하면서 점차 많은 친구들이 헌혈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과는 헌혈증 기부 1등 학과로 선정되었고, 저 역시 2010년에 헌혈유공장 은장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헌혈활동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내일을 선물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더욱 기뻤습니다.

제조업-마케팅-직무기여경험

믿음으로 이룬 작은 성공

갤러리아 백화점 액세서리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신생브랜드이다 보니 매출이 저조했습니다. 매출을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고객에게 믿음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객수첩을 마련하여 고객별 선호제품, 색상, 구매량 등의 특징과 개인적 대화까지 모두 기록했습니다. 찾아오시는 고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수첩에 기록된 내용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면서 친밀감을 쌓아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코디방법을 몰라 구매를 망설이는 고객이 많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 날의 코디에 맞는 액세서리를 추천하고 활용팁을 알려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저를 믿고, 우리 제품을 믿고 찾아오시는 고객이 많아졌고 우리 매장은 드디어 일매출 1위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점장님께는 저에게 스스로 매장의 문제를 인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으로 일등매장을 만들었다며 특별보너스를 지급해 주셨습니다. 저는 철저한 분석력과 커뮤케이션 스킬을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믿음을 주는 마케팅 전문가가 되어 세계속의 농심으로 도약하는데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제조업-생산직-입사후포부

[000, 제2의 임채식을 꿈꾸다!]

임채식 명장님께서는 학력차이를 극복하고 000 최초 고졸 공장장에 올랐고 2007년 8월에는 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한 이달의 기능인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재직할 당시에는 품질과 설비를 개선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현장 작업률을 92.4%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 2006년에 작업공정의 효율 극대화로 500만t 생산설비를 추가 투자 없이 일궈내 전 세계 350여개 열연공장 가운데 최고를 달성했습니다.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실전 능력을 갈고 닦으신 임채식 명장님과 같이 저도 입사 후 1년 동안은 현장에서 선배님들의 가르침을 몸소 보고 익히며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씩 배워나갔습니다. 또한, 금속재료학이나 기계공학같은 전문 지식들은 기술 도서들을 통해 습득하거나 주변 선,후배들에 배우며 익히겠습니다. 3년이 지났을 땐 금속기사, 초음파, 방사선비파괴검사기사 등의 자격증 취득을 준비할 것이며 입사 후 7년차부터는 작업공정 중 개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연구하여 작업공정의 효율을 높이도록 할 것입니다. 10년이 지났을 때엔 제선, 제강, 압연 기능장 자격 취득을 목표로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입사 후 30년이 지났을 땐 작업률 상승, 작업공정 효율 증가라는 업적을 남기고 특허를 2개 이상 갖은 제강분야의 명장이 되어 사원들의 귀감이 되겠습니다. 제2의 임채식이 될 000! 꼭 기억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제조업-생산직-지원동기

[용광로처럼 멈추지 않는 도전]

혁신적인 기술력과 친환경 경영으로 한국의 철강산업을 대표해온 000는 최근 세계적 철강전문 분석기관인 WSD에서 3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경제적 수익성에만 치중하지 않고 환경적 건전성과 사회적 책임성이 함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경영을 실천했습니다. 사회공헌그룹 운영을 통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들이 그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000의 헌신적인 모습들은 000 입사 지원의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인재를 소중히 여기고 창의적 사고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포스코에서 저의 모든 능력과 열정을 다해 일하고 싶어 지원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전공은 비록 자동차 산업과지만, 여러 전공의 다양한 자격증 취득을 권장했던 학교 운영방침 덕에 자연스럽게 금속에 대하여 접하게 되었고 철강업계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제강기능사, 금속재료시험기능사, 자기비파괴검사기능사, 초음파비파괴검사기능사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군 복무 중에도 자격증 취득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결과, 위험물 기능사, 방사선비파괴검사기능사를 취득하였습니다. 협력사와 함께 2020년 ‘글로벌 100대 기업, 매출 200조원’의 글로벌 기업이 될 000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가 되기 위해 앞으로도 저의 도전은 용광로처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제조업-생산직-난관극복경험

책임의 무게를 알게 된 계기

항공기 기관 정비사로 사천에서 군 복무를 하던 작년 7월 엔진 500시간 주기검사 작업과 2/4분기 공습경보 대피훈련이 겹쳤던 날이 있었습니다. 엔진가동시간이 500시간 되었을 때 해주는 작업이다 보니 교환할 부품도 점검해야할 항목도 많았습니다. 또한, 더운 날씨에 공습경보가 발생될 때 마다 몇 시간씩 방독면을 쓰고 대피해야 하는 상황이라 집중력이 저하된 상태였습니다. 연료 조절 장치인 F.C.U를 교환하는 작업을 하던 중 저도 모르게 옆에 있던 다른 항공기의 F.C.U를 잘못 장착하는 실수를 하였습니다. 며칠 뒤 간부의 발견으로 저의 실수를 알게 되었고 항공기에서 부품 하나 잘못 장착되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를 발생시키는지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저는 제 자신의 실수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중대장님께서도 “상황이 어찌 됐든 자신의 부주의로 생겨난 잘못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라고 말씀하시며 자숙의 시간을 가지며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고민한 끝에 내린 저의 결론은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업무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 작업 진행상황을 수시로 확인하여 메모하고 메모한 내용들이 실제 내용이 맞는지 매일 저녁 검토하였습니다. 이러한 업무개선과 노력들을 통해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알게 되었고, 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조업종-생산직-성장과정

배려를 배운 값진 경험

고모님께서는 이혼한 부모님을 대신해 저를 20년간 친아들과 같이 키워주셨습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물질보다는 정신적인 삶에 가치를 추구하셨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교회 집사님들과 함께 동네에 어렵게 사시는 독거노인을 찾아가 집안 청소와 빨래를 해주곤 하셨습니다. 비록 자신이 힘들지만 남을 도우면서 사는 삶을 사셨던 고모님을 보며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배웠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부족한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해보는 아르바이트라 일하는 것이 서툴렀지만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친절하게 일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손님이 벨을 누르기 전에 먼저 찾아가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는 사소한 배려는 손님들에게 친절로 비춰졌고 계산하며 나갈 때 마다 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사장님 또한, 손님의 대한 친절과 배려를 칭찬하시며 신입 아르바이트생 교육을 맡아 전담해서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지나치게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성격 탓에 신입 아르바이트생을 교육하면서도 우유부단한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고치기 위해 옳다고 생각되는 일엔 강하게 주장하는 것을 연습하며 결단력을 기르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확실한 결단력으로 포스코에서 가장 팀워크가 좋은 부서를 만드는데 앞장서고 싶습니다.

제조업-마케팅-변화

문수의 세상과 함께 하기

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변화는,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한 소년을 세상속으로 이끈 것입니다. 대학시절 봉사활동으로 베트남-한국인 다문화 가정의 멘토로 활동하였습니다. 처음 가정을 방문하던 날,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문수”는 저에게 말은 커녕 시선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베트남 어머니는 서툰 한국어로 ‘문수’가 친구들로부터 많이 상처를 받아서 저렇게 말이 없다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문수’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우선 사람에 대한 믿음을 심어줘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시간 40분 동안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야 했지만,저는 한번도 약속된 시간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태풍으로 혼자 무서워하던 ‘문수’를 위해 밤늦게까지 함께 수학게임을 하던 날, ‘문수’는 처음으로 제게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줬습니다. 저의 진심이 통했는지 ‘문수’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저는 문수를 위해 친구들을 초대해 초코파이 파티를 열어 주었습니다. 그 날,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문수’는 드디어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과 함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문수’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변화는 결국 저의 진실된 마음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